영어에 입이 막 트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30살 되기 전까지 5개국어를 마스터하겠다는 어마어마한 포부를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영어의 길이 아직도 멀고도 험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삶"이라는 할 일 때문에 외국어는 자꾸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면 조금 쉬고 과제하고 공부하다보면 또 다시 잘 시간이고 학교 갈 시간이고... 이렇게 반복되는 삶 때문에 그 틈새에 외국어가 비집고 들어오기가 힘들지 않나 싶다. (그래서 어른들이 공부에도 다 때가 있는 거라고 하시는 것 같다.)
어찌됐건 독일 유학을 결심하고나서 가장 먼저 걱정되었던 건 독일어였다. 당시 나는 정말 "영알못"에서 "영좀알"이 된 기간이 매우 짧았던터라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이 때문에 '독일어도 내가 맘만 먹으면 금방 해~' 하는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자신감은 금세 산산조각이 났다. 일단 영어랑 독일어가 생각보다 비슷하지 않고, 비슷하긴하지만 독일어가 영어랑 너무너무 비슷했다면 이걸 독일어로 부르지 않았을거다, 영어 사투리라고 불렀겠지 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는데 그 말을 정말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독어를 아베체데부터 배워서 대학원 강의를 알아들을 수준까지 올린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을 시간도 없었고, 빨리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는게 목적이었기때문에 독일어를 배워서 유학을 가는 것은 정말 실현불가능한 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독일에는 영어로 수업을 하는 석사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흔히들 "International master's course"라고 부르는, 한국어로 하자면 "국제석사"...라고 번역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인터네셔널석사는 수업부터 시험까지 모두다 영어로 진행되는 코스인데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칭에 들어갔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유학을 갈 조건을 충족하는지, 필요한 서류들은 뭐가 있는지, 수업은 들을만 한 지 등 실제로 독일에서 이러한 코스로 수업을 들었거나 듣고 있는 사람들의 후기도 많이 읽어보고, 베를린리포트라는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사례와 질문, 후기등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영국 유학을 생각했을 때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었던 이유는, 독일은 학비가 말도안되게 싸고, (심지어 외국인학생들에게도!) 또 영어라면 나름 자신이 있으니 필요한 영어점수만 만들어서 제출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독일 유학을 결심했을 때는 영국에 있었던 17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즈음이었다. 그 전에는 막연히 생각만 하던 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고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을학기입학을 위해서는 5월쯤에 원서가 마감이 되는데, 내년 입학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원서준비를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해도 엑티브 X가 전국민의 분노를 사면서도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고 공인인증서와 그 무수히 많은 휴대폰 문자인증들 때문에 서류준비를 해외에서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독일은 모든 서류에 직인이나 압인을 요구했기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경우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를 떼러 직접 학교에 갔어야했다.
그래서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2개월남짓 남았을 때에 한국에 들어왔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타이밍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 편에 이어서 계속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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