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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정보/독일 사는 이야기

한국과 독일에서 병가(call in sick)를 쓴다는 것

by Layla 레일라 2020. 5. 29.

 

 

<한국>

한국에서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는 정부 출연 연구소 (정출연)에서 일을 할 때였다. 당시에 나는 독일 유학 갈 때 쓸 돈을 모으겠다고, 정출연에서 주는 월급이 학사에게 주는 돈 치고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한다면서 평일에는 충북에서 풀타임으로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 다시 수원/서울로 올라와서 영어 강의를 했었다. 정말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던 때였다. 입사한 지 한 달 쯤 지났을까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과로로 인해서 림프절이 엄청 부어서 피부 밖으로 만져지고 보일 정도였다. 처음에는 한두개 튀어 나왔었는데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찍어본 후 의사선생님이 "진주 목걸이 하고 있는 것 처럼 엄청 많아요"라고 하셨었다. 림프종인지 아닌지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아는거라고 속단하긴 어렵다고 했지만, 매일같이 몸에 이상반응이 생기고 (반지가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손이 땡땡 붓고, 손가락 관절들이 너무 아파서 캔을 손으로 따지도 못하고 물 컵을 잡는 것도 힘에 부쳤다) 수시로 열이 오르내리고 죽을 것 같이 어지럽고 메스꺼워서 나는 정말 암에 걸렸구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 고개를 들지 못할정도로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서 도저히 영어 강의를 하러 갈 상태가 아님을 느꼈던 아침이었다. 모든 수업을 취소하고 하루종일 메스꺼움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방바닥에 토를 하고 그걸 치울 힘 마저 없어서 불 꺼진 수원 집 방 안에서 혼자 울면서 아파하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아파죽겠다고 하니까 엄마 아빠가 놀라서 괴산에서 수원까지 올라오셨다. 그래서 수원에서 크다고 유명한 병원을 갔는데 거기서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더니 별 이상 없다는 소견만 듣고 링겔 하나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링겔을 맞고나니 기력이 돌아서 뭘 먹어보기도 했지만 다음날 여전히 상태는 호전이 되지 않았다. 그게 일요일이었으니 당연히 월요일 출근이 불가한 상태였다. 박사님한테 연락을 드려서 저 출근 못하겠다고 지금 너무 아프다고, 아마 괴산으로 가서 병원에 입원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박사님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빨리 나으라고 얘기를 해주셨었다. 그렇게 병가를 신청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아서 팀장님께 결재도 받았다.

 

이렇게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병가를 쓰는 일이, 오히려 어이없는 곳에서 문제가 되었다. 나와 같이 일하던 다른 쌤들, 그러니까 인턴이나 석사후연구원, 혹은 석/박사 학생들은 팀의 구분 없이 한 오피스를 같이 썼었는데, 사실 우리 팀에는 나와 내 PI밖에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내 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같은 오피스를 쓰던 포스닥 중이셨던 박사님 한 분이 나를 처음에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그 분은 뭔가 내 사수같은 느낌으로 지내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퇴원을 하고 일에 다시 복귀했을 때, 다른 팀에 있었던 석사졸 연구원이 한명 있었는데, 그 여자가 갑자기 나한테 "정은쌤, 병가썼어?" 하면서 가시돋치게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원래 여기 병가 아무도 안써." 이러는 것이 아닌가.

 

원래는 뭐고 병가를 아무도 안쓴다는건 또 뭔 소리인가. 아플 때 쓰라고 있는게 병가인데, 아무도 안쓰는 문화를 갖고 있는 것 자체도 놀랄 노자인데 얼마전까지 죽을 것 같이 아팠다가 돌아온 사람한테 병가 아무도 안쓴다고 말하는게 사람이 할 소리인가? 처음부터 은근히 나이가 어리다며 반존대를 쓰는 것부터 해서 인사 안한다며 갑질 해대고 말 함부로 하는 것도 정말 꼴보기 싫었던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나보다 연차가 많고 나이도 많으니까, 좋은게 좋은거지 하면서 잘 지내려고 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정말 말도 섞기 싫어졌었다.

 

복지가 좋기로 유명한 정부출연 연구소였다. 5시 55분에 집에 갈 짐을 싸고 6시에 칼같이 내려가서 카드 찍고 나가는게 일상인 곳이었는데 병가를 쓴다는 이유로 내가 이런 쿠사리를 먹어야한다니. 일반 회사라면 이보다 더 심할텐데, 그런 곳에서 내가 과연 내 권리를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진 레일라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복제/도용/수정/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독일>

나는 독일에서는 한번도 call in sick을 해 본 적이 없다. 정말 죽을정도로 아픈 경험을 사람이 매일같이 하고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정말 심각하게 아팠던 적도 많이 없었다. 유일하게 몇 번 병원에 갈 정도로 아팠던 적은 대부분 주말이나 방학 때였기 때문에 실험 스케쥴을 조정해야할 정도로 아팠던 적이 없어서 call in sick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슈퍼바이저들은 꽤 자주했다. 슈퍼바이저라함은 보통 박사생들이나 포닥인데, direct supervisor라고 해서 실험실에서 직접 내게 실험들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사생들이다. 그리고 실험의 전반적인 진행방향에 대해서 가이드 해주는 역할은 보통 포닥들이나 교수님이 하는데, 대부분 이 곳의 교수님들은 너무 바빠서 그런 걸 하실 여유가 없다. (얼굴 뵙기도 힘든 분들이 많다.) 아무튼 이렇게 나에게 실험을 가르쳐주는 direct supervisor들은 박사생인데, 그들도 어쨌건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하는 employee들이다. 그런데 얘네들은 시도때도 없이 call in sick을 한다!

 

내 두번째 랩의 슈퍼바이저는 출산휴가에서 돌아온, 30대 초반의 여자였다. 박사 4년차여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아이가 있어서 아이를 nursery에 데려다줘야하기때문에 아침에 10시 이전에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하고 실험 스케쥴을 짤 때에는 10시 이전은 무조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또한 내가 얘랑 얘기를 하고 싶어서, 뭔가 discuss를 하고 싶어서 미리 얘기를 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얘를 찾아야하는 날이라면 반드시 3시 이전에 가야했다. 왜냐하면 얘가 아이 픽업을 하러 3시에 퇴근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스케쥴이 이곳에서는 너무도 당연하다. 실험실에 굳이 앉아있지 않아도 이 슈퍼바이저는 엄청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집에서 재택근무를 통해서 부족한 시간들을 스스로 채워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끝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논문을 냈고, 처음 낸 논문이 impact factor 5.7점이 넘어가는 저널에 실렸다.

 

근데 출산 후여서 그런지 굉장히 자주 아팠다. 항상 기침을 달고 살았고 열이 조금이라도 있는 날에는 무조건 실험실에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열이 있는 (감염력이 있는) 상태에서 회사에 나오는 것은 오히려 이기적인, 민폐를 끼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와서 어차피 일 못할 컨디션인데 왜 굳이 남한테까지 옮길 risk를 떠안고 오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열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로 call in sick을 한다. 또 자기가 아픈게 아니라 아이가 아픈 날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참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얘랑 같이 일을 하는 동안 그렇다고 성과가 나빴던 것도 아니다. 주어진 기간 동안 하리라고 기대되는 업무량을 소화해냈고, 논문도 디펜스도 잘 끝낼 수 있었다.

 

 

 

 

<계속 흰 우유만 먹을 수 밖에 없는 이유>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경영진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직문화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스템적으로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아프면 병가를 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병가를 쓰고서도 욕을 먹고 눈치를 보는 반면 독일은 아픈데 병가를 쓰지 않으면 욕을 먹고 눈치를 봐야한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보다 회사를 중요시 하지 않는 세상이다. 조직의 문화는 조직구성원이 만들어나간다. 초등학교 6학년들이 내년 우유급식을 초코우유로 바꾸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자기들은 흰 우유를 먹었는데 자신들의 후배들은 초코우유를 먹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우유급식은 흰우유로 지속이 되고 다음 학년들도 또 졸업하기 전에 초코우유 대신 흰우유를 선택지에 체크한다고 한다.

 

집단 이기주의가 원인이 아닐까한다. 나도 그런 혜택을 받고 싶지만 내가 받지 못했으니 너도 받지 말아야한다라는 그런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에 우리들의 회사에 경직된 문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병가를 핑계로 근무에 태만하고 성과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의 복지가 침해되는게 정당한 것일까? 사이버범죄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니 인터넷을 없애서 해결하자고 하는 사람들이나 병가를 잘 쓰게 하는 문화가 근무태만을 야기하니 병가를 쓰면 눈치를 주자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데에서, 그것도 다수의 희생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서로 매우 닮았다.

 

언제까지 흰 우유만 먹고 살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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