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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일하기

독일에서 취업하기 20. 베를린에 직접 가서 연봉협상을 하다

by Layla 레일라 202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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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신입사원의 경우 특히나 더) 회사에서 말해주는 연봉을 그대로 받는다. 이걸 재고 따지고 하면 배부르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의 상황은 다르다. 신입에게도 희망연봉을 물어보고, 지역마다 또 연봉에 편차가 크기 때문에 딱 정해진 숫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왠지 이번에 가면 연봉협상 (salary negotiation)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말 내내 유튜브를 통해서, 그리고 negotiation skill들을 다루는 책을 통해서 공부를 했다. 

 

내가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유튜브 링크들은 다음과 같다.

 

youtu.be/4VBjjkbEthY

youtu.be/6EpfttTlhx8

youtu.be/iUAcoetDgH4

요약을 하자면 기본적으로

1. 최대한 숫자를 먼저 말하지 않아야한다.

2. 내가 갖고있는 강점들과 회사에 가져다줄 수 있는 가치들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어야한다. (이게 협상의 근거가 된다)

3. 내가 이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다는 것을 어필해야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팁이나 표현들이 있으니 연봉협상을 앞두고 있다면 미리 여러번 돌려 보면서 표현들을 입에 붙여놓고 주의사항들을 숙지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2번을 준비하기 위해 기차 안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음. 내가 회사에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치를 보여주기도 해야겠고, 그리고 내가 컨텐츠를 잘 만들어내는 자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바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proposal을 만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내가 왜 평균이상으로 연봉을 받아야하는 사람인지 어필하기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여정을 통해 베를린에 도착했고, 도착한 후에 지하철을 타기 전에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사장님께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사무실로 와도 된다고 하셔서 바로 회사가 있는 곳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구글지도에서 경로검색을 했을 때 나오는 예상 소요시간을 바탕으로 Estimated Time of Arrival (ETA)를 메세지로 알려드렸다. 베를린 중심에서 꽤나 떨어져있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드레스덴에 비하면 훨씬 도시스러운 곳이었다. 코로나 락다운이 여전히 진행중이었지만 드레스덴에 비해서 훨씬 사람도 많았고 거리가 북적북적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사장님이 내려오셨다. 회사 건물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예뻤다. 하얀색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는데, 건물 구조로 미루어보아 연식이 좀 된 건물을 예쁘게 다시 치장해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층에 여러 스타트업 회사들이 같이 위치해있는 모양새였다. 문이 여러개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문이 열려있었다. 직원 한명이 사무실에 있었다.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프랑스 남자애였는데, 회사 홈페이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앳되고 잘생긴 친구였다. 사장님은 사무실을 구경시켜주셨고, 사장실(?)에 내 소지품을 둘 수 있게 해주셨다. 같이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데 바로 일어나서 그 직원이 앉아있던 사무실로 안내하셨다. 그러더니 이 친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소개시켜주시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박찬호 기질을 내뿜으셨다.

 

그렇다. 이 분은 그냥 원체 투머치토커 (말을 너무 많이하는 사람)였던 것이다. 가만히 선 자리에서 1시간 반을 또 수다를 떨으셨다. 그 긴 시간동안 내가 한 것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리액션을 한 것 밖에는 없었다. 지난번에 통화로 3시간동안 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듣고있자니 정말 고역이었다. 처음에 올 때는 그래, 베를린이니 연봉도 드레스덴보다는 높게 받을테고, 스타트업이니 내가 이것 저것 많이 시도해보고 배워 볼 기회가 있겠지? 라는 생각에 긍정적인 마인드로 왔으나 사장님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자 이런 사람과는 일을 할 수 없겠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 미팅 한다고 3-4시간은 붙들고 계실 그런 분이었다.

 

이미 이때부터 내 마음은 떠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다시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셨는데, 사실 이 부분도 안좋은 색안경이 씌워진 후에 들으니 참 어이없게 들렸다. "저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 그래, 연봉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주지 않는 이상 여긴 안되겠다.

 

드디어 연봉협상을 하는데, 사장님이 처음부터 숫자를 정확하게 말씀하셨다. 연봉협상 기술들을 잔뜩 공부해갔지만 다 의미가 없었다. 숫자를 정확히 말씀하시고 그게 월급 얼마를 의미하는지까지 말씀 하신 후  "이게 베를린 평균보다 조금 낮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어렵고... 어쩌구 저쩌구"라고 덧붙이셨다. 정말 유튜브에서 본 그대로였다. 연봉협상을 할 때는 항상 회사 상황이 요즘 안좋다 라는 얘기를 꺼낸다고 했는데, 진짜로 그런 걸 보고 속으로 조금 웃었다. 

 

그런데 오퍼를 받은 금액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나는 신입인데다가 이 분야에서 어느 수준이 적정선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가 전부였다. 내가 기존에 받았던 금액들에 비하면 훨씬 큰 숫자였지만 그래도 만족할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내가 석사를 했다는 점과 해당 분야 (디지털마케팅) 의 경력이 있다는 것,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이 회사는 어디가서 나만큼 자질이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는데 오퍼한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자 갑자기 정이 확 떨어졌다. 연봉협상을 하면서도 내가 끼어들을 틈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계속 말씀을 하셔서 그냥 잠자코 들었다. 프레젠테이션을 꺼내서 협상을 하거나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래도 일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최대한 경청을 한 후, 마지막에 가서 "지금 말씀하신 오퍼를 writing으로 써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이것 역시 유튜브에서 배운 것 중 하나였다. 구두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꼭 오퍼는 서면으로 받을 것.

 

물론 가능하다고 하셨다. 대충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내가 영사관에 가야할 시간이 다 돼서 일단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메일로 말씀하신 오퍼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예쁘고 하얀 건물을 나왔다. 조금 허탈했다. 이 회사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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