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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난 다음에는 듀얼스크린으로 내 CV를 보면서 이야기 하시는 것 같았다. 당신의 CV랑 내 CV가 비슷하다며, 내가 에딘버러에 있었다는 얘기를 보고 엄청나게 좋아하셨다. 당신도 글라스고랑 에버딘에 있으셨다고 했나..?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런식으로 스몰톡을 계속 이어나가셨다.
또 이세상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신 듯 했다. 당신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배웠다며, 외국에서 혼자 사는 그 기분이 어떤건지 잘 안다고 하셨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다가 문득 문득 질문을 하나씩 던지셨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경영학에서 배운 것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정말 질문이 제너럴해서 어떻게 말해야하나 하고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경영학에서 커버했던 과목들 위주로 말했다. 회계, 재무, 인사관리, 조직관리, 마케팅, 경제학, 생산운영관리, 경영과학 등을 배웠고, 내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했던 과목은 경영과학이었다. 경영과학에서 어떻게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결과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원하셨던 대답은 이게 아닌 듯 했다. "그래, 그런거 배운거 다 알겠는데, 경영학 자체가 생물학이나 science와는 다른게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다시 물으셨다.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건지, 어떤 대답을 하는게 좋을 지 몰라서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생물학만 공부를 하다가 경영학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것은 경영학과 학생들이 하나같이 조별프로젝트나 프레젠테이션에 능숙하다는 점이었다. 생물학이나 아카데미아에서는 팀워크나 콜라보레이션이 있긴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책임을 지고 혼자 이끌어가는 느낌이 큰데, 경영학에서는 뭐 하나를 하더라도 여럿이 함께 해결을 하고 이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나 디스커션들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카데미아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게 맞았나보다. 그 말을 듣고 싶으셨었나보다. "자네가 한 말을 팀웍이 많이 강조된다고 정리하면 되겠나?" 라고 하시길래 냅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뒷 부분은 사장님이 알아서 해결해주셨다.
나는 인터뷰를 하기 전 항상 관련 인물들의 뒷조사를 철저히 해두는 편인데, 보통은 구글과 링크드인만 잘 활용해도 어느정도 내가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장님의 이력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생물쪽에서 박사를 하셨길래 내 석사 논문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해보라고 한다거나 어느정도 생물학 관련 지식을 물어보실 줄 알았다. 하지만 석사 때 뭐 공부했는지는 하나도 안물어보고 거의 digital marketing 쪽 관해서만 물어보셨다.
전반적인 인터뷰는 사장님이 계속 말씀을 하시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굉장히 보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갑자기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우리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 말해보세요" 였는데, 이 질문은 너무너무 기본적인 인터뷰 질문이기때문에 확실히 준비를 해두었던 부분이라서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소개되어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이 회사는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판매하는 회사이며 클라이언트들은 누구부터 누구까지를 포함합니다"라는 식으로 정리해서 말했다.
나는 나름 조리있게 잘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충격적이게도 사장님은 "사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홈페이지에 있는 비즈니스모델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스타트업이라서 조금 유연하게 운영을 해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시면서 어떤 클라이언트들이 있는지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처음에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한국어 사용자가 지원을 할 줄 몰랐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설명을 듣고나니 왜 한국어 사용자를 필요로하는지 이해가 됐다. 한국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과 같은 한국 바이오회사들과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쪽 담당자의 영어를 도저히 못알아듣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그들과 소통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지원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셨다. 사람을 쉽게 좋아하고 믿는 나는, 첫 인터뷰에서 이렇게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자 콩깍지가 씌어버렸다. 이제 이 사장님은 다 넘어왔구나, 날 뽑고 싶어서 안달이 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후에도 사장님이 긴 긴 시간을 사용해서 나와 이야기 하는 동안 (거의 혼자 독백을 하시는 동안) 나는 열심히 경청했다. SEO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이 심하셨는데, 사실 당신은 SEO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았다. 이전에 있었던 직원 하나가 그 셋업을 해주는 덕분에 클라이언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SEO를 잘해야한다고 자꾸 언급하셨다. 심지어 스크린쉐어를 해서 구글에 어떤 키워드를 쳤을 때 회사이름이 몇번째에 나오는지,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주셨다. 나는 이미 다 아는 것이긴 했지만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리액션을 하며 경청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인터뷰다 싶지만, 그 당시에는 아 이사람이 날 정말 뽑고 싶어서 지금 거의 인터뷰 끝나고 뭔가 잡 오퍼를 하는 기분으로 진행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인터뷰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어갈 무렵, relocation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나는 이미 이 사람이 날 뽑고싶어서 안달이 났으니 딜을 걸어도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어차피 코로나때문에 재택근무를 한다고 들었는데, 코로나 락다운이 끝나고나서도 재택근무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집에서 회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구글지도로 찾아보셨다 (물론 스크린쉐어를 켜둔 상태로). 조금 생각을 해보시더니 일단은 한번 해보는걸로 하자고 말씀하셨다. 베를린까지 일주일에 한두번 왔다갔다 하고 나머지는 home base로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예 베를린으로 새로 이사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다보니까 내가 그 다음주 월요일에 베를린을 가야할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어차피 베를린 가는 김에 그럼 사무실 한번 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대면으로 만나서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진빠지는 3시간짜리 인터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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