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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정보/독일 사는 이야기

행정후진국 방역후진국 독일

by Layla 레일라 2020. 10. 21.

3일차 (20일 화요일)

정말 놀랍게도 병원 직원은 You are positive라고 말한 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황한 내가 "So? what now? what should I do?" (그래서요? 저는 그럼 지금 뭘해야되는거죠?)라고 물었더니 Nothing, nothing, nothing 이라고 nothing을 세번이나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내 하우스아츠트 (가정의)가 곧 전화를 줄터이니 그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란다.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났다. 내가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내가 증상이 악화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내가 정말 positive가 맞는지, 내가 누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하고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보 등 그 어떤 것 하나도!!! 알려주지 않고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 크리스랑 나랑 둘다 넋이 나가있었다. 크리스는 눈가가 촉촉해져서는 계속 I am sorry만 반복했다. 그리고 이 좁은 집에서 우리가 어떻게 quarantine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맞는 일이긴 하지만 니 여자친구가 코로나 양성이라는데 너는 제일 먼저 하는 말이 to save your own ass하기 위한거냐?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얄미웠다. 근데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할 수 밖에 없고, 각자 쓸 수 있는 방이 없는 이 집에서 어떻게 격리를 하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병원 직원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4월달에 피크를 찍고 난리를 쳤으면서 아직까지도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메뉴얼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단 가만히 있으라고는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날 만났던 사람들이 밖에 더 나가서 더 옮기기 전에 그래도 빨리 소식을 알려야겠다 싶어서 내가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다 연락을 돌렸다. 이게 실수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Gesundheitsamt (보건국)에 먼저 알리는게 맞았던 것 같다. 원래는 내 가정의가 보건국에 알리는게 의무라고는 하는데, 이 병원은 어떻게 된 놈의 병원인지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다. 아무튼 결국 한시간 후 쯤 전화를 준다던 병원은 결국 전화를 하지 않았고 패닉하기 시작한 내가 병원이랑 Gesundheitsamt에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을까? 이미 너무 상황이 마비되어서 나 말고도 이 사람들이 케어해야하는 환자들이 넘쳐나는건가? 근데 나한테 내 연락처를 물어보고 나와 접촉한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아내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한테 전화 한 통 하면 끝날 일일텐데? 그리고 크리스는? 크리스하고 나는 어떻게 격리를 해야하는지도 독일은 나라 법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State마다 규정이 다르고 시에는 또 규정이 다르다. 그래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하는지 누구의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아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정말 방치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실감했다.

 

패닉한 주변사람들이 내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정작 내 하우스아츠트는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Gesundheitsamt는 갖고있지도 않을 내 정보를 주변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 사람들은 Gesundheitsamt에서 내 정보를 알아오라고 했다고 했다. 아니 왜 일처리를 이따위로 하는거지? 그냥 나한테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

 

추후에 들었던 생각은 애초에 내가 그냥 Gesundheitsamt랑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았어야했나 하는 생각이었다. 나와 직접적인 컨택이 있었던 사람들과 간접적인 컨택이 있었던 사람들, 그들과 컨택이 있었던 사람들을 다 생각하면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의 사람들이 패닉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다 Gesundheitsamt에 전화를 걸었을 생각을 하니, 마비가 될 수 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증상이 없고 확진자와 접촉만 있었던 사람은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을 Category A로 분류하고 이 A와 15분 이상 보호장비 없이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컨택이 있었던 경우는 Category B로 분류되는데, 이 사람들은 자가격리 대상일 뿐, 검사 대상이 아니다. 검사는 주치의의 판단 하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행해지는데, 주치의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검사비를 160유로를 내야지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나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한테 "다 빨리 가서 검사 받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나도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계속 내게 이것 저것 물어봤다. 그렇게 저녁은 휴대폰에 불이 난 채로 보냈다. 사방팔방에 이메일을 쓰고 전화를 받고 연락을 돌리고... 아플 새가 없었다.

 

이쯤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가 아직까지도 이런것이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거지?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뒤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거야? 만약에 내가 정말 아파서, 호흡곤란이 와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면 어쩌려고 병원이 전화를 그렇게 안받아? 그리고 이렇게 일분 일초가 똑딱똑딱 지나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전염의 위험을 높이고 있을텐데 동선추적을 privacy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왜 나한테 contact list를 빨리 받아내지 않는거야???

 

일이 이따위로 진행이 되니 신뢰란 신뢰는 모두 떨어졌다. 오히려 학교에서, 교수님이, 연구소에서 알려준 프로토콜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빨랐다. 내가 교수님한테 바로 연락해서 corona test결과가 positive로 나왔다고하자마자 우리 연구소에서는 PI들끼리 긴급회의를 했다고 했다. 우리 교수님 비서는 나한테 바로 휴대전화로 전화해서 내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었고, 잠재적인 감염원으로 생각되는게 누가 있는지 물었다. 그제서야 제대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 옮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여태까지 나는 확진자와 컨택이 있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고, 심지어 9월 중순? 초? 쯤부터해서 나는 계속 자전거만 타고 다녔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통해서 감염됐을 확률은 0이다. 아예 탄 적이 없음. 그럼 남는 것은 친구들과 만난 경우나 마트에 간 경우 밖에 없는 건데,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아픈 애들이 없었기때문에 더 오리무중이었다. 크리스가 나보다 기침을 먼저 시작하긴 했는데, 정말 간헐적인 기침이었고, 우리 둘다 이런 상태로 한 일주일을 아무 증상 없이 있었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코로나일거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크리스 검사 결과가 positive로 나온다고해서 내가 크리스한테 옮았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왜냐면 내가 확진판정 받기 전까지 크리스랑 같이 생활했기때문에 그 때 옮았을 수도 있는거니까.

 

누구한테 옮았는지 여기서는 동선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난 끝끝내 모르겠지만, 정말 코로나가 남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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