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20일 화요일)
정말 놀랍게도 병원 직원은 You are positive라고 말한 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황한 내가 "So? what now? what should I do?" (그래서요? 저는 그럼 지금 뭘해야되는거죠?)라고 물었더니 Nothing, nothing, nothing 이라고 nothing을 세번이나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내 하우스아츠트 (가정의)가 곧 전화를 줄터이니 그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란다.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났다. 내가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내가 증상이 악화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내가 정말 positive가 맞는지, 내가 누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하고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보 등 그 어떤 것 하나도!!! 알려주지 않고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 크리스랑 나랑 둘다 넋이 나가있었다. 크리스는 눈가가 촉촉해져서는 계속 I am sorry만 반복했다. 그리고 이 좁은 집에서 우리가 어떻게 quarantine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맞는 일이긴 하지만 니 여자친구가 코로나 양성이라는데 너는 제일 먼저 하는 말이 to save your own ass하기 위한거냐?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얄미웠다. 근데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할 수 밖에 없고, 각자 쓸 수 있는 방이 없는 이 집에서 어떻게 격리를 하란 말인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병원 직원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4월달에 피크를 찍고 난리를 쳤으면서 아직까지도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메뉴얼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단 가만히 있으라고는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날 만났던 사람들이 밖에 더 나가서 더 옮기기 전에 그래도 빨리 소식을 알려야겠다 싶어서 내가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다 연락을 돌렸다. 이게 실수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Gesundheitsamt (보건국)에 먼저 알리는게 맞았던 것 같다. 원래는 내 가정의가 보건국에 알리는게 의무라고는 하는데, 이 병원은 어떻게 된 놈의 병원인지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다. 아무튼 결국 한시간 후 쯤 전화를 준다던 병원은 결국 전화를 하지 않았고 패닉하기 시작한 내가 병원이랑 Gesundheitsamt에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을까? 이미 너무 상황이 마비되어서 나 말고도 이 사람들이 케어해야하는 환자들이 넘쳐나는건가? 근데 나한테 내 연락처를 물어보고 나와 접촉한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아내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한테 전화 한 통 하면 끝날 일일텐데? 그리고 크리스는? 크리스하고 나는 어떻게 격리를 해야하는지도 독일은 나라 법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State마다 규정이 다르고 시에는 또 규정이 다르다. 그래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하는지 누구의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아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정말 방치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실감했다.
패닉한 주변사람들이 내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정작 내 하우스아츠트는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Gesundheitsamt는 갖고있지도 않을 내 정보를 주변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 사람들은 Gesundheitsamt에서 내 정보를 알아오라고 했다고 했다. 아니 왜 일처리를 이따위로 하는거지? 그냥 나한테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
추후에 들었던 생각은 애초에 내가 그냥 Gesundheitsamt랑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았어야했나 하는 생각이었다. 나와 직접적인 컨택이 있었던 사람들과 간접적인 컨택이 있었던 사람들, 그들과 컨택이 있었던 사람들을 다 생각하면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의 사람들이 패닉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다 Gesundheitsamt에 전화를 걸었을 생각을 하니, 마비가 될 수 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증상이 없고 확진자와 접촉만 있었던 사람은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을 Category A로 분류하고 이 A와 15분 이상 보호장비 없이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컨택이 있었던 경우는 Category B로 분류되는데, 이 사람들은 자가격리 대상일 뿐, 검사 대상이 아니다. 검사는 주치의의 판단 하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행해지는데, 주치의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검사비를 160유로를 내야지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나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한테 "다 빨리 가서 검사 받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나도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계속 내게 이것 저것 물어봤다. 그렇게 저녁은 휴대폰에 불이 난 채로 보냈다. 사방팔방에 이메일을 쓰고 전화를 받고 연락을 돌리고... 아플 새가 없었다.
이쯤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가 아직까지도 이런것이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거지?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뒤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거야? 만약에 내가 정말 아파서, 호흡곤란이 와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면 어쩌려고 병원이 전화를 그렇게 안받아? 그리고 이렇게 일분 일초가 똑딱똑딱 지나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전염의 위험을 높이고 있을텐데 동선추적을 privacy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왜 나한테 contact list를 빨리 받아내지 않는거야???
일이 이따위로 진행이 되니 신뢰란 신뢰는 모두 떨어졌다. 오히려 학교에서, 교수님이, 연구소에서 알려준 프로토콜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빨랐다. 내가 교수님한테 바로 연락해서 corona test결과가 positive로 나왔다고하자마자 우리 연구소에서는 PI들끼리 긴급회의를 했다고 했다. 우리 교수님 비서는 나한테 바로 휴대전화로 전화해서 내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었고, 잠재적인 감염원으로 생각되는게 누가 있는지 물었다. 그제서야 제대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 옮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여태까지 나는 확진자와 컨택이 있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고, 심지어 9월 중순? 초? 쯤부터해서 나는 계속 자전거만 타고 다녔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통해서 감염됐을 확률은 0이다. 아예 탄 적이 없음. 그럼 남는 것은 친구들과 만난 경우나 마트에 간 경우 밖에 없는 건데,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아픈 애들이 없었기때문에 더 오리무중이었다. 크리스가 나보다 기침을 먼저 시작하긴 했는데, 정말 간헐적인 기침이었고, 우리 둘다 이런 상태로 한 일주일을 아무 증상 없이 있었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코로나일거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크리스 검사 결과가 positive로 나온다고해서 내가 크리스한테 옮았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왜냐면 내가 확진판정 받기 전까지 크리스랑 같이 생활했기때문에 그 때 옮았을 수도 있는거니까.
누구한테 옮았는지 여기서는 동선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난 끝끝내 모르겠지만, 정말 코로나가 남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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