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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정보/독일 사는 이야기

코로나 시대에 정신과가 바쁜 이유

by Layla 레일라 2020. 10. 21.

3일차 (20일 화요일)

그렇게 폭풍같은 저녁이 지나고나서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잔뜩 담긴 통화를 마치고나서 한숨을 돌렸을 즈음에는 크리스와 나는 이미 격리를 시작한 상태였다. 나는 침실에 머물기로 하고 크리스는 거실에 있기로 했다. 같이 쓸 수 밖에 없는 화장실과 부엌은 공간적 분리가 불가능하기때문에 시간적 분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방 밖에 나갈 때면 항상 장갑과 마스크를 꼈고, 화장실은 한 사람이 쓴 다음에 바로 다음사람이 쓰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바이러스가 파고들 틈은 분명히 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또 크리스가 여태 나랑 같이 지내면서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얘는 그냥 이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게 확률 게임이다. 그냥 여태 운이 좋게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았던 것일 수 있고, 운이 좋게 여태까지는 침투했던 바이러스가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어서 질병의 onset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크리스는 그냥 운이 좋게 항체를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가정들의 "운이 좋게"들은 "운이 나쁘게"로 너무나도 쉽게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 확률을 낮추는 것에만 있다. 물론 이런 격리가 아주 유의미하게 바이러스의 전파를 완벽 차단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마저라도.

 

 

 

연락을 돌리면서 세상 그런 대역죄인이 따로 없었다. 나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졌다. 나도 내가 누구로부터 전염된건지 알기라도 한다면, 내가 무슨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을 갔다거나 여행을 갔다거나 공항을 갔다왔다면 그래도 덜 억울하기라도 할텐데 나는 주변 친구들을 만난 것 외에는 조용히 살았는데 왜 내가 걸려야하는건지, 나에게 이 바이러스를 갖다준 ㄱㅅㄲ는 도대체 누군지 그저 알수 없는 그 누군가가 매우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 확진소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의 blame은 다 내가 고스란히 받아야했기에 너무 속상했다. 이 바이러스를 내가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나도 재수없게 걸린건데...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 정신과가 바빠지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왜들 그렇게 psychology 얘기를 많이하는지 이해가 갔다.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좆같고 서러운데, 이 와중에 또 내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대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그러게 적당히 싸돌아다니지 그랬니"하는 뉘앙스들이 정말 많이 속상하게 했다. 나는 독일에서 준수하라는 방역수칙들은 다 준수하면서 살았다. 마스크 꼼꼼하게 끼고 손소독제도 쳐발쳐발하면서 다니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손도 꼬박꼬박 잘 씻었는데, 그런데도 걸린 걸 나보고 어쩌란거야. 쿼런틴 하는 것 자체가 답답하고 막막하고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접촉자 분류를 위해서 사람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속상했다. ㅅㅁ가 언니 서럽겠다고, 너무 죄인처럼 생각하지말라며 누구의 잘못도 아닌거라고 해줬는데 이게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이 날은 몸 아픈 것보다 속상한게 더 컸던 날이라 증상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침은 조금 더 심해졌는데 여전히 열은 없고 두통은 아주 약간 있고, 설사는 더이상 안한다. 후각 미각은 아직도 제자리고 피로감이나 근육통은 갈수록 호전되는 것 같다. 코는 아직도 화-한 기분이 들고 콧물은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준.

 

빨리 낫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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