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코로나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나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 만큼 코로나 증상들이 감기에 비해서 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는 것을 블로그에 적는 것에 있어서 별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티스토리 링크들은 며칠 후 다 비공개로 돌렸다.
3일차였나 4일차였나
점점 냄새를 맡는게 힘들어졌었는데, 이쯤부터는 아예 냄새가 맡아지질 않았다. 이 얘길 하면 감기에 걸려서 코가 막혔을 때는 당연히 냄새를 못맡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감기에 걸렸을 때의 코막힘과는 전혀 다르다. 일단 첫째로 코로나로 인해서 나는 코가 막혀본 적은 없었다. 보통 감기에 걸리면 처음에 맑은 콧물이 나오다가 점점 나아가면서 노란색의 점성이 높은 콧물이 나오고 코가 막히게 되는데, 나는 첫날 증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맑은 콧물이 정말 미친듯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코는 막히지 않았다. 하지만 코 전체가 와사비를 한 숟갈 먹은것처럼 찡하게 자극되어있는 상태였고 그 기분이 코 바깥쪽 뿐만 아니라 안쪽 깊은 곳까지도 고루 퍼져있었다. 그런데 코는 시간이 지나도 막히지 않았고, 코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강한 냄새, 예를들어 디퓨저나 향수와 같은 것들에 코를 바짝 들이밀고 냄새를 깊게 들이 마시고 mindful하게 내가 이 예상하는 냄새를 상상해야지만 그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날이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나도 이게 후각 상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코가 많이 자극돼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더 흐르고, 코로 들어오는 냄새를 아예 맡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나는 분명 뜨거운 것을 만졌는데 뜨겁지 않은 느낌이다. 내 뇌는, 내 인지능력은 내가 방금 냄새를 맡는다는 행위를 한 것을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정보가 들어와야하는지 안다. 하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것은 0이다. 아무런 정보가 머리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부터 불안감이 급습해오기 시작했다. 콧물에 의해 물리적으로 코가 막혀서 공기가 코로 들어오지 않아서 냄새가 안나는게 아니었다. 분명 공기는 내 코 깊숙한 곳까지 막힘 없이 들어오는데 내 코의 세포들이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코로나와 후각상실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코로나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후각상실과 미각상실을 경험하고있었다. 이때 처음 "후각장애"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한번도 후각을 가진다는 것에 감사한 적이 없었는데, 후각을 잃는다는 것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코로나로 인한 후각상실의 원인은 다른 코로나 관련 증상들처럼 아직 정확한 원인이나 underlying mechanism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와있는 연구들을 모조리 찾아서 읽어봤는데, 그나마 제일 신빙성 있고 유력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비말이 닿는 위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말이 코를 비롯한 상기도에 처음 닿았던 사람들은 병의 심각도가 상대적으로 낮은데에 비해 비말이 기관지나 폐쪽에 먼저 닿은 사람들은 폐렴에 가까운 증상들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각상피세포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는 ACE2 receptor가 있기 때문에 마비 혹은 신경 손상을 일으킨다는 설명이었다.
후각상실 관련된 이야기를 찾다보면 olfactory training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후각 훈련이라는 뜻인데, 특정한 향 몇가지를 각각 20초씩 냄새를 맡는 행동을 하루에 2번씩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찾아보는 와중에 정말 많은 사람들의 comment에서 자기도 후각을 상실했다고 호소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말 놀랍고, 정말 무섭게도 그 댓글들의 상당수는 몇개월이 지난 후에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후각이 돌아온 후에 다시 olfactory training을 찾아서 검색을 하고 들어와서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터넷에서 보이는 정보들은 나를 두렵게하기에 충분했다.
남자친구가 사온 꽃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고, 방금 세탁이 끝난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의 기분 좋은 향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좋은 냄새들 뿐만아니라 악취들도 느껴지지가 않았는데, 심지어는 밥이 살짝 쉰 것을 모르고 먹었다가 배탈이 나기도 했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자 심지어 똥냄새라도 간절히 맡고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확률상으로는 10-15% 정도만이 이렇게 후각 소실을 경험하고, 젊고, 여자일수록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저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숫자상으로는 그리 높은 확률이 아니지만, 내가 걸리면 100%와 다를게 무엇인가? 하루아침에 장애를 갖게 됐는데 저 확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냔 말이다. 옛날에는 코에는 stem cell이 없다고 믿었었는데 최근 코에도 stem cell이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신경이 손상됐다고 할지라도 재생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정보를 아무리 긁어모아도 그 페이퍼들이 말해주는 숫자는 내게 아무런 위안도,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매일 나를 울게 했다.
'독일 유학 정보 > 독일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기가 사라진 세상 - 코로나로 인한 후각상실 극복법 (2) | 2020.10.31 |
---|---|
코로나 확진 후 병이 악화됐다 (0) | 2020.10.31 |
코로나 시대에 정신과가 바쁜 이유 (2) | 2020.10.21 |
행정후진국 방역후진국 독일 (0) | 2020.10.21 |
독일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다 (0) | 2020.10.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