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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사라진 세상 - 코로나로 인한 후각상실 극복법

by Layla 레일라 2020. 10. 31.

 

 

 

후각을 잃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나 역시 경험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후각이 전혀 없이 살았던 날들은 고작 3일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겪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후각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으로 시작을 했다. 이 즈음에는 항시 아팠기 때문에 하는 일이 먹고 약먹고 자는 일 밖에 없었는데, 남자친구가 사다준 치즈퐁듀 + 바게트를 먹다가 문득 느꼈다. 아예 후각이 사라졌다는 것을.

 

분명 나는 치즈퐁듀를 먹으려 하고 있었다. 오븐에서 나와서 따끈따끈하게 녹은 치즈가 폴폴 김을 풍기며 내 앞에 있고, 갓 오븐에서 나온 노르스름하고 바삭한 바게트가 눈 앞에 있었다. 바게트를 치즈에 푹 찍어서 한 입을 베어물고는 '세상에 이렇게 맛이 없는 치즈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치즈의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입안에서는 내 입에 들어와 있는 음식의 식감과 온도, 그리고 치즈의 짠내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리 내가 비슷하게 묘사를 한다고해도 이 느낌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도 들고, 분명 이 치즈는 내가 그동안 수차례 먹어본 바에 의하면 이러이러한 맛이 나야하는데, 짠맛 이외에는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에는 모든 음식이 그랬다. 코로나로 인한 후각상실도 있지만 미각상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미각도 상실한 걸까 하면서 두려워했다. 하지만 미각은 시간이 지나도 지속이 됐다. 쓰고 짜고 시고 달고 하는 것들은 다 느껴졌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것에 있어서 코로 킁킁 냄새를 맡지 않더라도 얼마나 후각이 큰 역할을 하는지 이번에 알게 됐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향으로 먹는거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대부분 맛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향에 가깝다. 맛은 쓰고 짜고 시고 달고 하는, 혀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지만 김치 특유의 냄새, 고기에서 느껴지는 향, 야채에서 풍겨지는 신선한 냄새는 다 코를 통해 느낀다. 음식을 음미할 때 이런 재료 본연의 향이 싹 사라지고 맛과 식감만 남자 식욕이 뚝 떨어졌다. 내가 씹고 있는 것은 치즈가 아니라 그저 부드럽고 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김치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배추의 식감과 살짝 시큰하고 짠내가 느껴지는데, 고춧가루와 마늘, 다양한 양념이 어우러져 발효를 통해서 내는 그 김치 특유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졌었다. 내가 씹고 있는 것은 김치가 아니라 그저 작은 고춧가루들이 범벅되어있는 짠 종잇장에 지나지 않았다.

 

방금 꺼내온 세탁물의 향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토록 질색을 하던 남자친구의 똥냄새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농담처럼 '차라리 네 똥냄새라도 맡고싶다'라고 말한 적이 몇번 있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냄새가 0으로 수렴해버린 그 날들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를 가장 무섭게 했던 것은 이 증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코로나에 대한 연구가 아직까지는 많이 이루어져있지 않고, 저마다 제각각 다른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 현상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이런 현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갓 증상이 시작된 나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 보통은 몇 주 내로 후각이 돌아온다고는 하지만 안그런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래서 급 olfactory training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와 관련된 논문들을 읽었다. 내가 생전 논문을 이렇게 desperate하게 읽어본 것이 석사 학위를 따고 난 후라는 게 참 우스운 일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것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신기하게도 드레스덴에서 수년 전에 나온 페이퍼 중 하나가 다양한 질병이나 바이러스감염으로 인해 후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olfactory training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것이 있었다. 이 olfactory training이 확실히 후각을 돌려준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어느정도 후각이 돌아오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는 결과를 보고 나도 바로 아마존에서 essential oil 6종세트를 주문했다. 인터넷에서 olfactory training을 검색하면 유칼립투스 향, 레몬 향, 정향 향, 장미 향, 이렇게 네가지를 각각 20초씩 mindful하게 맡아야한다고 나온다. 정향은 essential oil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인터넷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오일을 샀다.

 

처음에는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essential oil이라 함은 정말 향기가 잔뜩 농축되어있는 것인데 여기서도 정말 아.무.런.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희망이 짓밟힌 느낌이었다. 이깟게 진짜 도움이 되기는 하는거야? 하며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으니 꾸준히 했다. 인터넷에서는 하루에 2번 하라고 되어있었지만, 나는 틈이 날때면 이 오일들을 펼쳐놓고 어떤 향인지 손으로 가려서 스스로 볼 수 없게 한 후 냄새를 맡고 생각해보기를 반복했다. 

 

광고아님. 인터넷에서 아무거나 사도 된다

코를 바짝 들이 대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도 정말 머릿속에 들어오는 input이 0이었던 날들이 지나고, 어느날 갑자기 citric한 냄새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레몬이나 오렌지 종류의 상큼한 냄새가 나는 것들은 코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치가 100이라고 하면 1에서 2정도의 수준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깐, 내가 방금 맡은 냄새가 맞나? 하고 다시 숨을 들이쉬어야 했지만 (그래도 더 많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다른 향들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citric 계열의 향들은 조금씩 뭔가가 느껴지긴 했다.

 

 

시간이 지나자 티트리나 유칼립투스 향처럼 뭔가 botanical한 향들이 자그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향보다는 화학약품의 불쾌한 냄새가 더 많이 났다. 이걸 냄새라고 칭할 수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화학약품이 주는 자극에 노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어느날 갑자기 라벤더향이, 내가 알고 있는 그 라벤더향으로 느껴진 날이 있었다. 이전에 맡았던 냄새들은 실제 내가 맡을 수 있는 향의 1-2%에 가까웠지만 이 날 맡았던 라벤더향은 거의 50%에 가깝게, 아주 진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라벨을 가린 후에 이 여섯가지 향을 맡아보면 각각 이게 무슨 향인지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호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짓는 냄새, 남자친구가 사온 장미꽃 냄새와 같은 미묘하고 섬세한 향기들은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우습게도 향수냄새가 맡아지지 않았다. 향수라는 것은 본디 향기의 집약체인데, 에센셜 오일의 향을 맡을 수 있었던 내가 향수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는 것이 참 이해가 안됐다. 라벤더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었던 그 날 이후로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기침도 눈에 띄게 줄고, 열은 더이상 나지 않았으며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가슴통증도 덜해졌고, 초반에 날 괴롭혔던 설사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향기가 없는 세상을 빠져나왔다.

 

 

@글/사진 레일라 La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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