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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테라 성장 일지

몬스테라 성장 일지 1. 첫 만남 그리고 가지치기와 수경재배

by Layla 레일라 2019. 12. 23.

나는 독일의 이 황량하고 처량한 백년은 된 것 같이 생긴 기숙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울고싶었다. 다른 기숙사보다 다소 큰 방에 배정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왔지만 허접한 스폰지로 만들어진 침대와 1유로의 값어치도 안되어보이는 책상과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방을 보고 도대체 이 곳을 어떻게 사람사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그저 막막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저런 가구도 사들이고 방을 꾸미기 시작했는데

식물을 하나 들여놓고 나니 방의 분위기가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당시 나는 유튜브에서 외국 vlog를 많이 보고 있었던 터라 외국 10대 20대 여자애들이 어떻게 방을 꾸미는지 유심히 보곤 했는데, 다들 공통적으로 갖고있었던 것이 바로 이 몬스테라였다. 그래서 나도 알아보다가 한겨울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는데, 정말 황당하게도 얼어서 죽어버린 화분이 배달되었다. 그 화분이 배달되던 날의 바로 직전 날이 워낙 추운 날이기도 했는데, 그 추운 날 어느 택배창고에서 밤새 꽁꽁 얼어버렸던 것이었다. 살려보려고 별 짓을 다해봤지만 이미 심각하게 꽁꽁 얼어버린터라 회생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나고나니 시금치된장국에 들어있는 시금치마냥 흐느적거리더라. 독일어도 못하고 독일인에게 독어로 컴플레인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던 나는 그냥 7-8유로 버린셈 치고 혼자 분을 삭혔는데, 그렇게 몬스테라와의 첫 만남은 끝났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나는 차츰 독일에 적응을 해가고 있었고 여전히 다시 추운 겨울이 돌아왔다. 그동안 몬스테라를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ikea에 있는 화분을 알아보다가 ikea에서 몬스테라를 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있는 지점에는 재고가 남아있지 않다고 나와서 그럼 몬스테라 말고 다른 (큰) 인테리어용 화분이라도 사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남자친구와 같이 ikea를 방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재고가 하나도 없다고 나와있었건만 한 열 그루 정도는 있었다. 그리고 가격도 나쁘지 않은 14.99유로. 그 바로 옆에 9.99 유로짜리 더 크고 화려한 화분이 있어서 조금 고민했지만 이내 나의 사랑 몬스테라로 결정하고 소중하게 끌어안고 집에 왔더랬다.

 

그렇게 우리집으로 오게 된 몬스테라. 저 화분 그릇?이라고 하나 그것도 같이 사왔고 스프레이도 99센트 주고 사왔다. 몬스테라가 워낙 공중습도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해서 자주 스프레이로 물을 분사해주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사온건데 정말 사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내가 얘를 돌보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 흙을 피해서 잎에다가 뿌리면 나의 지나친 사랑이 식물을 썩어 죽게 할 일도 없기 때문에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것.

처음 데리고 왔을 때에는 엄청나게 긴 공중뿌리가 화분 밖으로 한 60cm정도는 튀어나와있어서 걔는 잘라주었다. 그리고 처음에 돌돌 말려서 뾰족한 꼬깔처럼 생겼었던 어린 잎이 하나 있었는데 며칠 지나자 이렇게 살살 펴졌다.

 

시간이 더 흐르자 완전히 펴지긴 했지만 아직 어린 잎이라서 잎이 굉장히 연하고 다른 잎들에 비해 강직도가 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키도 점점 커지고 이파리 줄기 모두 조금씩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 돌보고 있다가 문득 화분을 보니 애가 너무 화분 크기에 비해 무성하게 우거진것 같아서 가지치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많이 정보를 알아보고 가지치기 하는 법이나 물꽂이 하는 법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고 공부를 한 다음 끓는 물에 소독한 주방가위 (가난한 유학생에겐 원예가위따위 없다.)로 줄기를 잘라주었다. 

공중뿌리가 굉장히 많긴 하지만 얘네들이 거의 대부분 다시 흙속으로 파고들어서 이런 애들을 꺼냈다간 자칫 뿌리가 다칠 것 같아 공중뿌리 중에 흙에 파고들지 않은, 한번도 상처를 입지 않은 아이들만 잘랐다. 사진 정가운데에 보이는 두꺼운 공중뿌리는 전에 60cm정도 튀어나와있어서 내가 잘라주었던 애인데 얘는 혹여라도 상처때문에 늦게 자라거나/자라지 않을까봐 가지치기 명단에서 제외했다.

 

원래는 꽃다발을 꽂아두는 화병인데 입구가 넓은 것이 좋다고해서 이렇게 큰 화병에다가 줄기 두개를 꽂았다. 공중뿌리에 묻어있는 흙은 물로 살살 씻어서 조금 없앤 후에 화병에 꽃았는다. 물은 2-3일에 한 번 갈아주면 된다고 하는데 식물에 비해 물의 양이 많아서인지 물이 별로 더러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3-5? 6?일에 한번씩 갈아주었는데 물을 갈아줄 때는 전에 있던 물을 완전히 버리고 새 물로 채워주는 것보다 전에 있던 물을 절반정도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서 그렇게 해 주었고, 물은 2-3일 전에 받아두었다가 주는 것이 좋다고해서 그렇게 해 주었다. 근데 물을 미리 받아두는 것은 염소를 없애기 위한걸로 알고 있는데 독일 물에는 원래 염소소독을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괜히 복잡하게 군 건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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