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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스운 것은 학사를 졸업하고 나서 내가 줄곧 했었던 생각과 후회의 주된 부분은 "아 나는 왜이렇게 실험 경력이 없지?" 하는 것이었다. 이 분야 (생물학)에서는 '뭘 해봤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스펙으로 판단되는데, 나는 실험수업에서 배운 것들과 URP (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을 통해서 배웠던 cloning(복제기술)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만한 실험스킬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실험 경력을 쌓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고 그 때문에 집을 떠나 시골에 있는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인턴쉽을 했었다. 그 후에 독일로 석사를 오고 나서는 프로그램 자체가 실험을 많이 시키고 연구중심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내가 굳이 노력해서 발벗고 나서지 않아도 정해진 코스만 제대로 따라가도 이력서에 실험 스킬이 가득 찰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만약 내가 계속해서 연구쪽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더라면 이런 경험들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2년동안 실험과 연구를 해보고나서 내가 확실히 배운 것이 하나가 있다면, 그 어떠한 실험경력도 아닌 "나는 절대 박사를 하지 않겠다" 라는 내 확고한 마음이었다. 그 전에는 "박사? 할 수 있으면 할까?" 하는 생각이 조금 있긴 했는데, 이것은 한국에서의 척박한 연구환경이 아닌, 독일에서의 연구환경에서, 어느정도 워라밸을 보장받고, 어느정도의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속삭임들 때문이었다. 실제로 독일에서의 박사 처우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낫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갈아 넣어서 연구를 시키지만 이곳에서는 그렇게까지 일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는 분위기인데다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급여를 주기 때문에 아주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박사를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이러한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나는 도저히 "연구"를 할 재목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하는 다른 일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일들이 있는데, 나는 도저히 누가 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나서서 논문을 읽어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와서 밥을 먹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내 연구에 대한 궁금증이 도저히 가시지 않아서 미쳐버리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는 내가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 내 영어가 부족해서 논문 읽는게 부담스러워서 그런거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이런 거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누가 시키면 마지못해 할 수는 있고, 이것에 돈이 걸려있거나 성적이 걸려있으면 열심히 할 수는 있지만, 이걸 하는 과정이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와 저렇게나 싫어하면서 석사는 어떻게 했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쁘리라는 법은 없다. 나는 석사 졸업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 수반되는 논문이나 연구들은 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목표를 성취하는데에서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것을 2년 하고 끝나는 것과 앞으로 평생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은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구워삶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집에가서도 그저 재밌어서 논문을 읽는 애들은 도저히 내가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졸업즈음에 "내가 석사하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내가 박사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농담처럼 듣는 이들도 있었고,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군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것을 깨닫는 것 만으로도 내 석사는 그 값어치를 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고 많은 일들 중에서 내가 확실히 아니라고 선을 딱 그어버릴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더욱이 내가 대학교 4년을 투자한 전공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나는 이것을 석사 과정을 통해서 깨달았고, 이것이 내가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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