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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정보/독일에서 취업하기

독일에서 취업하기 2. 졸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by Layla 레일라 2021. 3. 7.

2021/03/06 - [독일 유학 정보/독일에서 취업하기] - 독일에서 취업하기 1. (프롤로그) 독일어를 못해도 가능하다

 

 

 

졸업논문을 쓰는동안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너무 힘들었기에 졸업 직후에는 구직의욕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졸업 논문을 썼던 랩에서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이어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생활비 걱정이나 비자 걱정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나의 게으름을 부추기는 근원이 됐다. 그래서 일단은 크리스마스 지나고 생각해보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특별하게 구직준비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구직을 시작하고나니 아 내가 이 분야에 너무 경험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내 딴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는 업계에서의 경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그래서 인턴쉽이라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조차도 회의감이 들었다. 학부 졸업하고도 인턴쉽을 했었고 석사를 하는 동안 내내 3번이나 했던 lab rotation (여러 실험실을 돌아가면서 연구에 참여하는 제도)들도 인턴쉽에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에 이놈의 취업시장은 도대체 언제 인턴쉽이 아닌 정식사원으로 입사할 기회를 주는거지? 하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인턴쉽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몇개월 투자해서 경력을 조금이나마 쌓을 수 있다면 인턴쉽이라도 마다않고 하겠다라는 마음가짐이었다. 비록 페이가 적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의 투자는 아무것도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한가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졸업자는 인턴쉽을 할 수가 없다. 인턴쉽은 "등록되어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requirements (지원자격)나 your profile (당신의 프로필)란을 살펴보면 항상 "enrolled student"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Indeed에 올라와 있는 잡 공고 예시

간혹가다가 이러한 지원자격의 제한이 없는 공고들도 있었지만 (즉, 졸업 후에도 인턴쉽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단 독일에서 영어를 쓸 수 있는 포지션이 굉장히 한정적인데 그 중에서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이 때 '나는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졸업을 하려고 했나' 하는 생각들이 밀려왔다. 졸업을 하지 말았어야했다. 한 학기라도 휴학을 하고 인턴쉽을 했었어야했다. 그깟 master thesis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졸업 후에 나는 학사 졸업후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아직도 academia의 물이 덜 빠진 지원자가 되어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하겠다 하는 두려움도 생겨났다. 석사씩이나 했는데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실험실에 남아서 계속 적성에 맞지도 않는 연구를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에 너무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다. 나는 왜 그 개고생을 해서 석사를 했을까?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찾아봤더라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2년차 경력을 가진 직장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석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이것저것 많은 활동을 해야지! 했는데, 정신없이 논문에 코박고 지냈던 시간들이 지나자 고개를 들어보니 나는 이미 다시 졸업생이 되어있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진즉에 깨닫고 졸업장을 받고 학생신분을 벗어던지기 전에 다른 쪽으로 길을 터 두었어야했다. 그깟 학점 0.1점 더 받기 위해서 아등바등 했던 시간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졸업을 하고나서 독일어를 배워서 취업을 하려던 순진한 계획은 "석사까지 했는데 아직도 취업이 힘들다니"하는 자괴감과 "언어는 또 언제 배워서 취업을 하나"하는 막막함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졸업을 하지 말았어야했다. 졸업을 해서 취업이 더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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