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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언니가 들려주는 대학원 이야기

학사로는 취업이 안될 것 같아서 대학원을 가려는 학생들에게

by Layla 레일라 2020. 9. 10.

 

 

내가 대학원을 처음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대학교 4학년때였다. 그 전까지는 대학원은 죽어도 안가~ 하면서 살았는데 이런 내가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에는 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는 자연대를 나왔다. 이과라고 해도 공대는 취업이 잘 된다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있지만, 자연대는 조금 다르다. 자연대는 기초과학, 그러니까 그냥 과학 있는 그대로의 과학 그 자체를 좋아하는 단과대라고 보면 된다. 공대는 우리가 갖고있는 지식을 사용하여, 혹은 새로 지식을 창출해내며 어떻게 우리 삶에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반면, 자연대는 (아무도 관심 없을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밝혀내는데에 더 관심이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회사들은 자연대보다는 공대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대는 흔히 "Academia (학계)"에 남아 계속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물론 내가 수능을 마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나는 이런 건 하나도 몰랐다. 지금 보면 참 답없는 애였구나 싶기도 하지만, 나만 이랬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고, 누구나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시절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잘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했다. 그래서 나는 생물학과를 선택했고, 이러한 것은 하나도 모른 채로 분자생물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렇게 재미가 있었던 생물학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대학교에서 배우는 생물학은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었다. 난 도대체 내가 뭘 배우는 건지도 모르면서 강의실에 앉아있었고, 무슨 생각으로 대학교 1, 2학년을 보냈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렇게 해서 1년을 휴학을 했고, 그동안 에버랜드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하면서 배운 인생의 쓴맛이 강의실에 앉아서 시키는 것만 제대로 해도 칭찬받는 학생이란 신분이 얼마나 소중한 신분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휴학 후에는 정말 악착같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모든 강의는 녹음을 해서 강의가 끝나자마자 다시 들었다. 당시에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30-40분이 아까워서 자취를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은 언제나 24시간 개방이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하고 집에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이 그 시절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수강했던 전공과목 20학점에서 모두 A+를 받았다. 그렇게 어렵고 싫다고만 생각했던 전공이었는데 A+로 도배가 된 성적표를 받자 기분이 달라졌다. 그동안 어렵고 싫다고 생각했던 것이 진짜 이게 어려운 학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충분한 노력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학기에는 취업준비 (취준)를 해야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당시에 취준이라는 것이 너무 막막하고 무섭게 느껴졌었다. 우리 과에서는 취준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누구에게 물어봐야하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내가 이렇게 승승장구 하고 있는 전공이 있는데 이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대학교 2학년 때에는 남들이 다 한다기에 나도 경영학 복수전공을 신청해서 나름 취업을 염두에 둔 수를 놓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영어도 잘 못하고 뭔가 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그 때의 내게 주고 싶은 조언은 "완벽히 준비된 때라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일단 부딪혀보고, 부딪히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부딪혀보고 안되면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부딪혀야하는 벽이, 바위가, 장애물이 얼마나 강한지, 내가 얼마나 많은 장비와 힘을 갖춰야 부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직접 부딪혀서 얻는 수 밖에 없다. 나보다 이전에 같은 벽에 부딪혀 봤던 다른 사람들 (선배들)이 해주는 조언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갖춘 장비와 힘은 내가 갖고있는 장비와 힘과는 다르다. 하지만 부딪히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장비만 백날 천날 끌어모으고 내공을 쌓겠다며 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의외로 우리가 두려워 했던 벽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고, 의외로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부딪혀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대학원을 가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취준보다는 조금 더 쉬운 길일 수 있다. 일단 한국에서는 대학원을 간다고 해도 생활비 지원이 되는 연구실들이 있고, 등록금도 어지간한 경우에는 다 지원이 되기 때문에 취준으로 1-2년을 소비할 바에 그냥 대학원을 가서 석사 학위라도 따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또한, 앞이 정말 불투명한 취준을 하는 것보다는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는 것이 어쩌면 승률이 더 높기 때문에 대학원의 길로 접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학원을 간다고해서 연봉이 무조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을 간다고해서 여러분의 취업의 기회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취업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어렵다. 연봉은 어쩌면 대학을 졸업한 후에 바로 입사해서 2년차가 된 케이스가 대학원에서 2년을 보내고 신입으로 입사를 한 케이스보다 높을 수 있다. (물론 회사나 직무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진학을 할 때,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지금은 다소 후회할 만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던 것처럼 취업과 대학원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딜레마로 고민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을 해본적도 없고 대학원을 가본 적도 없으니,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의삭결정은 내게는 줄곧 후회를 남겼다. 지금이야 석사가 다 끝난 마당이니까 석사를 했다는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지만,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면 이 🐶고생을 해서 얻은 이 석사학위가 나의 커리어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쏟았던 그 노력과 정성과 열정을 내가 취업에 쏟았더라면, 아마 비슷한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요새 자주 든다. 물론 한국에서 자대 대학원을 진학하는 경우는 정말 별다른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독일로 유학을 오려고 영어성적이며 영문 이력서 자소서 필기시험 인터뷰를 준비하는데에 쏟았던 노력과 정성이 취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대학원을 가고싶다는 학생들에게 나는 종종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인지,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인지 생각해 보라고 권유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인생이 폭삭 망해버리거나 죽을 정도로 힘든 고난을 마주하지는 않겠지만, 내 의사결정으로부터 최대의 아웃풋을 내고자한다면 꼭 고려해 볼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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