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석사언니가 들려주는 대학원 이야기

큰 랩이 좋을까 작은 랩이 좋을까?

by Layla 레일라 2020. 11. 15.

 

 

 

내가 졸업한 한국의 대학교는 내 전공에 해당하는 랩이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도 빡센 랩, 덜 빡센 랩, 큰 랩, 작은 랩이 공공연하게 정해져있었는데, 이것은 어딜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석사를 마친 독일의 드레스덴 공대에는 CMCB라는 바이오연구소들의 집합체? 모임? 연구단지? 같은 것이 있다. CRTD, BIOTEC, MPI (그 유명한 막스플랑크 연구소)등 여러개의 연구소들이 합쳐진 연합같은건데, 이 곳에는 랩이 적어도 수백개가 있다. 또 대학병원의 연구소들까지 합치면 더 많다.

 

그렇게 많은 랩들의 규모는 정말 천차만별인데, 그래도 한국에서 내가 경험한 랩들보다 작은 랩은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랩들이 좀 작은 랩들이긴 했다.) 나는 석사과정에 포함되어있는 랩로테이션을 통해서 3개의 랩을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두 랩은 해당 분야에서 거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엄청 유명하고 규모도 빵빵한 랩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랩은, 규모 자체는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랩이었는데 나는 결국 이 랩에서 석사 논문을 썼다.

 

내가 본 큰 랩의 장점은 일단 추천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추천인제도가 잘 자리잡혀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거의 인맥을 통해서 직업을 구하고, 이직을 한다. 또 "좋은" 추천서를 받으면 진학이나 이직에 정말 큰 메리트가 되기 때문에, 이 추천서를 잘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유학준비를 할 때에는 지도교수님 한 분께 추천서를 받았고, 다른 한 분은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 (그러나 우연찮게도 이 분이 당시 학과장님이어서 겸사겸사 이 분께 받았다)이었는데 독일에서는 '수업을 들었다'라는 사실만으로는 추천서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practical course를 통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어느정도 랩에 기여를 하고, 랩 사람들이 나의 업무를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만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하는 것이 나름의 상식이다. 그런데 추천서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학계에서 내노라 하는, 잘 알려져있는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것이 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교수님으로부터 받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사실 큰 랩들은 교수님이 무지막지하게 바쁘다. 교수라는 것은 말이 교수지, 사실은 중소기업 사장쯤 되는 직업이나 다름없는데, 실험실이라는 사업장을 운영을 해야하고, 또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관리를 해야하고, 거기에 더불어 수업도 하고 학생들 평가도 하고, 더불어 논문 출판이나 scientific discussion과 같은 과학쪽 일들도 겸해야하는 자리이다. 거기에 또 funding을 받기 위해서 외부강연을 하거나 발표를 하기도하고, 자신의 연구를 어필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하는 참 할게 많은 자리이다. 물론 독일에서는 교수님들이 다 비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행정적인 일들은 그들이 다 처리를 해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교수님이 바쁜 건 여전하다. 그래서 큰 랩에서 학생 연구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교수님이 나의 먼지같은 존재를 알아차리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물론 처음에 들어갈때야 인터뷰를 할 수는 있겠지만서도, 그것들도 대부분 포스닥이나 scientific advisor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담당을 하고, 만에 하나 처음에 인터뷰를 한다고해도 그 후부터는 교수님이 내 연구에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주거나 하는 일은 큰 랩에서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서를 써달라고하면 써주긴 한다. 특별하게 엄청나게 미친놈처럼 잘못을 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나쁘게 써주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 큰 랩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수월하다. 특히 박사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렇게 큰 랩을 한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내 선배 중 한명은 이런 랩에서 랩로테이션을 한번하고 학생연구원으로 1년 정도를 일했는데, 이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추천서 덕분에 영국에서 마리퀴리펠로우십을 받아서 박사진학을 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 교수님의 네임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작은 랩들에서 받은 추천서가 나쁘다거나 박사진학에 문제가 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내가 작은 랩에 있는 동안 발견 했던 장점은 supervising에 있었다. 나를 직접 가르쳐주고 관리?해주는 사람을 한국에서는 사수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supervisor라고 부른다. 따지고보면 직속상사인데, 이 사람의 능력에 따라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슈퍼바이저가 능력이 없으면 스스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하기때문에 independency가 증가할 수는 있겠지만, 능력있는 슈퍼바이저에게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논문을 쓰는 법, approach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날 수 밖에 없다. 능력있는 슈퍼바이저때문에 내가 거저 먹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슈퍼바이저는 내가 저런 과학자로서의 소양을 잘 쌓을 수 있게 가이드를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석사생을 가르치는 supervisor는 박사생이거나 포스닥이다. 박사 1년차는 보통 학생을 가르치지 않고 (자기도 배우기 바쁘니까) 보통 2년차 이상부터 학생을 가르치는데, 누가 봐도 포스닥이 박사생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자기도 잘 모르는 박사생에게 배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포스닥에게 배우는 것이 더 좋은데, (모든 랩에서 이렇다고 단정짓기는 매우 어렵지만 대개는) 큰 랩에서는 한 포스닥이 이끌고 가르치는 박사생이 이미 수두룩한지라 보통 박사생들이 석사생을 가르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사생에게 배우는 것보다 포스닥에게 배울 때, 논문을 쓰거나 연구 접근방법에 대해 디스커션할 때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결코 내 일이 더 쉬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결국에는 사람 바이 사람이겠지만, 나에겐 포스닥은 그만큼 나름 "어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냥 쉽게 친구처럼 가서 아무때나 멍청한 질문을 해도 되는 대상은 아니었다. 따라서 혼자 공부해야하는 시간이 많았고, 정 몰라서 도저히 나 혼자 답이 안나올 때 찾아가면 나름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사생들에게 슈퍼바이징을 받았을때는 내가 혼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들고가도 박사생선에서 해결이 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그들 스스로도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과학자들도 인정할만한 실험을 설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른 포스닥들에게 물어보고 디스커션을 해야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애초에 포스닥에게 슈퍼바이징을 받으면 이런 해결과정이 좀더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논문을 쓰는 면에서도 나는 작은 랩에 있었던 것이 굉장히 좋은 선택이자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포스닥 한명이 나를 책임지고 가르치기때문에 논문을 절대 대충 써서 낼 수는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대충 쓴 논문을 제출할 때는 그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것이다). 내 연구의 스토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논문 자체의 구성을 싹다 뒤집어 엎기도하고 다시 쓰기를 수차례를 거듭한 후에야 review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사생들은 그들 스스로의 글쓰기 능력도 출판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한낱 석사생인 나에 비해 월등히 낫지 않으므로 랩로테이션 소논문을 썼었을 때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결론을 얘기하자면, 나는 여러 랩을 경험할 기회가 있다면 큰 랩과 작은 랩을 모두 가보라고 하고 싶다. 큰 랩은 추천서에 좋고 작은 랩은 성장에 좋다. 두 랩을 모두 갈 수 있다면 석사에게는 그게 아마 베스트가 아닐까.

 

 

/글 레일라

 

✅ 레일라의 일상을 생생히 볼 수 있는 브이로그: YouTube (독일 유학 일상/ 영어 공부 / 해외 생활) 독일 공대생 Layla

영어 과외 (IELTS/영문이력서/영문자소서/영어인터뷰/영어회화)

독일 인터네셔널 석사 유학 가이드북 서류준비 (공증, 우니아시스트), CV&Motivation letter 작성 예시 및 팁, 필기고사&인터뷰 후기 및 팁

> 구매하신 분들이 작성해주신 리뷰 보기

> 전자책 5000원 할인 쿠폰 받기

>크몽 (kmong) 구입 링크

독일 인터네셔널 석사 수석 졸업생의 유학 컨설팅 (CV, motivation letter 첨삭)

독일생활정보/독일유학정보 >>> Tistory 레일라 블로그

Instagram: @chaeinji

레일라가 만든 영문 이력서 (CV) 양식 구입하기

🚫이 블로그의 사진이나 글을 사용/공유하고 싶다면 >> 저작권 관련 공지 확인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