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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정보/독일에서 취업하기

독일에서 취업하기 11. 흔치 않은 지원자

by Layla 레일라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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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를 뭐라도 하나로 제대로 골라야 CV든 cover letter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고싶은 회사는 많았지만, 이것이 그 회사에서 하는 일에 내가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회사에서 돈을 많이 줄 것 같았기 때문이어서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마인드는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들은 이런 사람을 바라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시키면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널려있다. 회사가 원하는 사람은 이 특정한 일을 시켰을 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닌 "잘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생물학에 석사가 있으니 이건 더이상 설명할 것도 없을 것 같고.. 또 내가 뭘 잘하더라? 생각해보니 블로그를 잘한다. 시키지 않아도 잘하고, 유튜브를 한 경험도 있다. 이걸 직무로 바꾸면 뭐가 될까? 마케팅. 마케팅이다.

 

나의 사고의 흐름은 이러했다. 그래서 나는 마케팅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영업이나 판매같은 건 시키면 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내가 재밌어서 하는 일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약영업의 경우 한국에서는 워낙에 이미지가 안좋아서 학부때는 그냥 남의 말만 듣고 "난 그건 안해"하고 선을 그어버렸었는데, 현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제약영업의 경우 옛날같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영업을 재밌어서 할 만한 사람은 아닐 것 같아서 다시 선을 그었다. 그리고 좀더 솔직히 말하면 영업은 정말 소위 말하는 인싸(인사이더)들이 그들의 탁월한 말솜씨와 친화력으로 장악하고 있는 무대 같아서 내가 그들 사이에서 실력을 발휘해봤자 묻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마케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케팅이 우스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내가 그나마 갖고있는 몇가지 스킬들이 마케팅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장기적으로 재밌게 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케팅 책을 읽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잔뜩 적어두었다. 결국 인터뷰가 바빠지면서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읽는 과정에서도 와 이런 insight가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무릎을 쳤던 적이 몇번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책을 찾아서 보는게 즐거웠고, 퇴근 후 뜨끈한 목욕물안에서 마케팅 관련 전자책을 읽는게 힐링이 된다는 생각을 한 날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 이 길로 가도 괜찮겠구나" 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부때 복수전공으로 해두었던 경영학 학사가 빛을 발휘하는 날이 왔다. academia를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이미 내 CV에 있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이미 생물학으로 석사를 한 뒤였고, 만에 하나 나중에 블루카드라도 신청하는 경우에는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해야한다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생물학을 아예 냅다 버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제약회사의 마케팅 직무였다. 제약회사는 자고로 생물학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product knowledge를 갖기 쉬우니까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제약회사의 마케팅에 지원하는 지원자들의 상당수가 경영학만을 공부했거나 생물학만을 공부한 사람들일거라는 계산이 섰다.

 

많은 사람들이 "생물학관데 경영학을 왜 복전했어?"라고 물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던졌기에 나의 선택은 희소성을 갖고 있었다. 남들이 쉽게 하지 않는 선택이 나를 "흔치 않은 지원자"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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